2010년 12월 현재 쿡TV 무료영화 순위 1위인, 프레스티지.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주연: 크리스찬 베일, 휴 잭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크리스찬 베일과 놀런 감독의 작품이라니 안 볼 수가 있나. 배경은 19세기말 런던, 마술이 유행하던 시절 두 마술사의 광기어린 경쟁을 소재로 한다. 마술과 과학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 눈요깃거리가 많은 영화다. 한때 동료였던 두 마술사의 치열하고 긴박한 대결 구도 또한 흥미롭다. 거기에 판타지적 요소를 살짝 가미하여 오묘한 마술 세계의 신비를 더해준다.
사실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테슬라의 실험이 나오는 장면에서 절규했다. 아악- 안돼 판타지는 안돼-
하지만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허무맹랑한 삽입은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니콜라 테슬라의 순간이동 실험은, 필라델피아 레인보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실제 진행되었던 실험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한 에디슨과 테슬라의 이야기를 삽입한 것 역시 기발한 발상인 듯.
이 영화에서도 시간의 흐름이 직선적이지 않아서 좀 헷갈리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시나리오 구성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알고보니 원작 소설이 있더라는. 시간나면 책도 읽고 싶다.
영화는 앤지어(휴 잭맨)의 마지막 공연으로 시작한다. 한때 동료였으나 이제는 경쟁자로 남은 보든(크리스찬 베일)은 앤지어의 순간이동 마술의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관람객으로 위장하고 무대 아래 장치를 확인하러 내려간다. 그 순간 앤지어는 무대 밑 마술 장비인 물탱크 속으로 빠지지만 자물쇠가 잠겨 익사 위기에 처한다. 보든은 앤지어의 죽음을 막기 위해 물탱크를 부수지만 실패하고 앤지어는 익사한다. 보든은 살해 혐의로 체포되고 감옥에서 앤지어의 일기장을 받는데, 여기서 영화의 시간 배분이 시작된다. 1) 앤지어가 죽고 앤지어의 일기장을 받은 보든이 감옥에 갇혀있는 현재와 2) 보든의 비법 노트를 훔친 앤지어가 보든의 순간이동 비밀을 얻기 위해 테슬라를 찾아가는 시점, 3) 그리고 두 마술사의 경쟁을 그리는 그보다 더 과거 시점.
이 세가지 시간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놀런 감독은 시간 구분에 "목발"이라는 장치를 숨겨뒀다. 테슬라를 찾아가는 시점의 앤지어는 목발을 짚고 다니니 유의해서 본다면 덜 헷갈릴 듯.3)번 시점은 말그대로 동료였던 두 마술사가 원한이 쌓인 이유를 말해주고, 시간이 갈수록 둘의 경쟁이 극도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보든이 완성한 순간이동 마술을 두고 존재감 없는 듯한 보든의 마술 보조사인 팔론까지 더해져 세 명의 풀리지 않는 이야기가 얽히게 된다.
2)번 시점은 보든이 앤지어에게 순간이동 마술의 비법이라고 알려준 테슬라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앤지어가 훔친 비법 노트는 보든이 앤지어에게 일부러 전달한 것으로 자신이 알려준 테슬라가 사실은 비법이 아니었다며 앤지어를 조롱하는 메시지로 끝난다. 하지만 테슬라가 복제 가능한 기계를 실제로 개발하게 되고, 앤지어는 그 기계로 완벽한 순간이동 마술을 완성한다. 앤지어의 공연을 보고 완벽한 마술에 놀란 보든은 그의 비밀을 캐내려 하지만, 영화의 첫부분에서처럼 용의자로 검거된다. 1)번 시점에서 나오는 앤지어의 일기장 역시 앤지어가 대리인을 시켜 고의로 전달한 것으로 보든을 조롱하며 끝남과 동시에 마지막 이야기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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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지어는 죽지 않았었다. 그는 복제 기계를 이용하여 마술을 할때마다 자신을 복제하고, 하나의 자신은 물탱크 속에서 익사시키고 또다른 자신으로 생존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순간이동 마술의 비법을 궁금해 할 보든의 심리를 이용하여 살해 혐의를 계획하고, 그의 계획은 성공한다. 앤지어는 보든의 비법을 모른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보든의 순간이동 비법은 따로 있었다. 쌍둥이 형제가 한 사람의 삶을 사는 희생이 그것이다. 보든의 반쪽 삶은 교수형에 처하지만 쌍둥이 형제인 또다른 보든이 존재한다. 영화 내내 큰 존재감 없이 등장했던 팔론이 바로 그 쌍둥이 형제이다. 팔론이라는 이름으로 반쪽 생명을 얻은 보든이 앤지어를 총살하고 비로소 앤지어는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의 비법이 쌍둥이 형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경쟁의 마무리를 알리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팔론이라는 인물이 복제된 보든인지 쌍둥이인지 헷갈려서 영화를 두번 봤는데, 보든과 팔론은 둘이 아닌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쌍둥이 형제이다. 시간적인 순서상 가장 먼저인 앤지어 아내의 죽음 뒤에 보든이 어떤 매듭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부터 이미 그 둘이 하나였음을 말해준다. 보든은 비법 노트에서 말한다. "그는 해답을 원했고 난 진실을 말해줬다. 사고가 있었던 밤, 내 자신과 싸웠다. 나의 반쪽은 평범한 매듭을 다른 반쪽은 이중 매듭이라 했다. 난 정말 모르겠다."
모르고 볼 땐 몰랐지만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눈빛, 표정, 성격, 말투 모두 확연히 달랐다. 하나의 인물은 자상하고 인간미가 보이는 눈빛이지만, (형 보든) 하나의 인물은 거칠고 약간은 히스테리컬하다. (동생 팔론)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누구를 보든으로 누구를 팔론으로 언급하는 부분은 없으나 새라와 결혼한 인물의 이름이 보든이고 다른 쌍둥이 형제의 이름을 팔론으로 생각한다면, 보든은 마술에 있어서 능력은 뛰어났으나 배짱이 부족했고, 거기에 비해 팔론은 독기에 가까운 열정이 강한 인물이다.
다시 보면 크리스찬 베일이 등장하는 씬은 주로 팔론의 역할임을 알 수 있다. 이름만 보든인 채로 경쟁 구도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팔론이다. 팔론의 행색으로 땅에 묻힌 것이 새라의 남편 보든이며, 앤지어의 순간이동 마술에 우리가 졌다며 다시 찾아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보든이다. 반면 처음 새라에게 총알 마술을 보여주는 것은 팔론이고, 새라와 싸운 것도 팔론이고, 새라를 자살에 이르게 만든 것도 팔론이다. 그리고 앤지어의 비법을 캐내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팔론이다. 결국 감옥에 갇혀있는 보든은 이름만 보든인 팔론이다. 사실 둘을 보든과 팔론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둘 다 팔론이기도 하고 보든이기도 한 삶이니깐.
창살을 사이에 두고 갇혀있는 보든이 팔론 행색을 한 창살 밖 보든에게 말한다. "이젠 각자 가는 거야. 영원히... 네 말처럼 물러났어야 했어. 미안해 전부 내 탓이야. 새라 자살도, 자살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어. 이젠 자유롭게 살아 내 몫까지-"
보든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살아남은 또다른 보든은 앤지어를 찾아가 그를 죽인다.
검색해보니 마지막에 딸은 안은 보든이 아빠인지 삼촌인지 의견이 분분하던데, 개인적인 내 생각은 삼촌이 아닌 아빠다. 애초에 경쟁 구도는 앤지어와 삼촌 보든이었으니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은 건, 진짜 보든 혼자다. 결국 무의미한 경쟁이었을 뿐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근데, <프레스티지> 이 영화 흥행에 성공했었나? 쿡TV에 올라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모르고 넘어가기엔 상당히 아까운 영화다. 한꺼번에 두번을 봐서 그런지 쓰다보니 거의 독후감이 되어버렸다. -.- 그만큼 마음에 드는 영화다.
배트맨 시리즈 중 본 것이라고는, 크리스토퍼 놀런과 크리스찬 베일의 또다른 명작인 <다크나이트>뿐이다. 그때 감동먹고 <배트맨 비긴즈>를 봐야겠다 생각하고 아직 못 봤는데, 다가오는 동면 모드에는 배트맨 시리즈나 감상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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